두 개의 빛 - 오상일 전시 서문

 

두 개의 빛


이병희(갤러리정미소 아트디렉터)


오상일은 꾸준히 욕망이라는 인간의 조건이 어떻게 현실에서 긴장을 야기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다. 오상일의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긴 항해와도 같다. 이 이야기의 한 챕터이자 한 정박점으로써의 갤러리정미소에서의 전시 <<Mortality & Liberty>>에서, 우리는 ‘필멸의 운명’과 ‘자유 혹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


작가는 꾸준히 구상 인체 조각을 근간으로 한 조각 작업을 해왔다. 작가가 구상 인체 조각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 혹은 현대 삶에 대한 성찰적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전시는 단지 조각의 진열에 불과하지 않다. 작가는 어떤 기존의 상징을 사용한다기보다는 전시장에서의 각각의 오브제들이 만들어내는 긴장으로부터 새로운 알레고리와 서사를 만들 수 있는 설치작업을 한다. 새로운 서사는 현대성의 맥락 속에서 펼쳐진다. 그 중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특히 현대 주체가 처한 어떤 모순과 부조리, 즉 욕망의 측면이다. 욕망의 주체에게 아름다움과 추함, 꿈과 현실, 희망과 절망, 자유와 속박, 죽음과 영원, 운명과 초월 등등, 그것의 모순과 덧없음 속에 인간은 갇혀있다.


<<Mortality & Liberty>>의 전시 공간은 현대성에 대한 어떤 알레고리의 공간이다. 전시장에서의 각각의 오브제들로 구성된 설치군은 욕망의 주체의 현재 상태를 암시한다. 우선 하나의 설치 군인 <자유 - 비상으로의 초대>에서, 배경이 되는 영상에서는 창공을 힘껏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모습이 상영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바로 그 영상에서의 독수리가 철창에 갇혀있는 모습으로 현실의 공간에 전시된다. 그 독수리를 감시라도 하듯 철창 바깥에는 이제 막 성숙을 앞둔 사춘기 소녀처럼 보이는 천사들이 위치한다. 마치 창공을 나는 독수리처럼, 인간은 자유를 꿈꾼다. 그렇지만 이 자유는 현실에서의 속박으로 인하여 더욱 열망하게 되고, 더욱 염원하게 되고, 더욱 욕망하게 되는 그 어떤 욕망의 대상으로만 그려진다. 그리고 그 욕망의 운명은 마치 이카로스의 운명처럼 비극적이다. 

그리고 다른 한 켠의 <죽음 - 꽃들을 위한 진혼곡>에서는 목련이 흐드러지게 휘날리는 영상을 배경으로, 실제 전시 공간에서는 커다랗고 탐스러운 목련이 또한 매끄럽고 부드러운 표면으로 바닥에 떨어져있다. 그런데 그 목련에는 여성 신체의 한 부분들을 암시하는 유방, 엉덩이, 그리고 손과 같은 인체의 부분들이 각각 결합되어있다. 마치 봄 날 한껏 피었다가, 하룻밤이면 지고 마는 목련처럼, 인간의 화려함과 아름다운 삶은 한껏 그 멋을 낼 듯 피었다가, 져버리고 만다는 덧없음의 은유이다. 이는 인간 욕망의 향하고 있는 하나의 지점,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어떤 지점을 나타낸다. 그 죽음이라는 경계는 욕망의 양 측면, 화려함과 비극성, 열망과 절망 등이 공존하는 지점이다.


이렇듯 각각의 설치 군은 각각의 대조와 긴장 속에서 상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죽음의 종말이 가져오는 절망과 비극성이 만들어내는 긴장은 바로,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지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빛이다. 또한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것을 그토록 염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속박 속에서 더욱 강렬한 욕망으로 거듭난다는 또 다른 줄기의 강한 빛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와 긴장은 새로운 빛을 발산한다. 그리고 바로 그 새로운 빛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서사를 써낼 수 있는 것이다.


관객과 함께하는 현실의 공간에는 철창에 갇힌 독수리가 마치 박제된 양 등장하고 있고, 그와 대결하는 천사들은 마치 그 독수리를 감시라도 하듯 긴장 상태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파편화된 여체를 담고 있는 목련들은 함께 어떤 새로운 알레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의 형상은 오늘날의 주체들의 양상을 나타낸다. 마치 독수리와 천사들은 서로 끊을 수 없는 어떤 관계로 묶여있는 것 같다. 이들은 마치 서로를 원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감시하는 듯하다.
반면에 우리에게 친숙한 자연의 요소들인 목련이라든가, 실제 날고 있는 독수리, 그리고 드높은 창공은 단지 영상으로써 제시된다. 즉 우리는 자연의 요소들을 환영의 이미지로써만 보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공간에 서있는 천사들과 파편화된 여체들은 그들의 욕망의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고만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상실한 욕망의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 쌓여있는 멜랑콜리의 주체이자, 덧없음의 알레고리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가볍게 그 멜랑콜리를 벗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천사들은 너무도 어여쁘고, 매끄럽고 그리고 당당하게 서있다. 바로 이 가녀리면서 동시에 당당한 이들이 처한 현실이 바로, 이들의 욕망의 대상인 힘껏 하늘을 날던 독수리를 철창 속에 가두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속박의 현장에 있는 천사들의 아이러니한 모습은 이같은 아이러니와 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이다. 우리와 같은 현실의 공간에 서있는 그들의 눈은 인공 눈이고, 그들의 몸은 모두 같은 사이즈의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가벼워보인다. 이들은 관객과 함께 현실의 공간에 위치하고 있지만, 마치 복제된 로봇이나 사이보그들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뻣뻣하게 서있는 그들은, 가상현실에서의 사이보그처럼 자유롭지도 않고, 자연의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천사가 아니다. 마치 전지구화시대인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처럼 그들은 규준화되어 있고, 단지 허공에 붕 떠 있을 수밖에 없는 물화된 존재이다. 차디찬 석고로 표현된, 그렇지만 그들은 아름답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어떤 현실, 즉 완벽해 보이는 외양 속에서 불완전함을 딛고 서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과연 독수리는 다시 창공을 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의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불가능의 지점에서만 현실에 출현할 것이다. 오늘날의 주체의 초상으로 표현된 천사들은 작지만 당당하며, 꼿꼿하게 서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외양은, 불완전함과 무능함을 담고 자신의 욕망의 대상을 가두기에 염원이 없다. 욕망의 대상들을 가두면서, 그리워하는 아이러니한 현대의 멜랑콜리한 주체들의 초상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파편화된 주체로서만 표현될 수밖에 없다.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운명과 그것의 극복 사이에서 그들은 현실에서는 불완전한 채로 끊임없이 미끌어지는, 분열되는 주체로, 파편화된 모습으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다. 바로 덧없음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현대 인간 주체에 대한 조건임에 수긍할 밖에 없다.


오상일의 이번 전시는 오늘날의 주체들의 조건, 즉 그/그녀를 구속하고 있는 서사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 것은 아마도 우리가 끊임없이 저항하고, 보충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서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낫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처럼 오상일의 작업은 성찰성을 기반으로 현대 주체의 욕망에 대한 재발견을 겨냥하게 된다. 오상일의 구상 조각들은 하나의 복합적인 전체 공간 속에서, 긴장과 아이러니를 통한 어떤 추상적인 대화를 한다. 즉 거대한 설치 공간설치 속에서 오히려 상징과 은유적인 표현은 오히려 추상적이고 혼란스럽고 낯선 풍경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일종의 갈등과 대결과 긴장의 공간이다. 이제 우리는 여태껏 우리에게 익숙했던 서사를 낯설게 경험하며, 어떤 강한 열망과 뭔지 모를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새로운 욕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오상일 개인전 / 갤러리정미소

by spoa | 2008/05/07 13:25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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